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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몹시나 저조한 포스팅으로 스치듯 지나는 사람들도 nusys.co.kr을 찾지 않게된 지금. Techie로써의 삶은 어떻게 된 걸까 반추한다.
 연말이라 그럴까. 일상이라는 약한 짜증 속을 건너내려오면서


*WIRED 저작물이고, 위만복님이 번역한 글임을 밝힙니다.
 



WIRED MAGAZINE: 16.12

Tech Biz : People RSS

Ray Ozzie Wants to Push Microsoft Back Into Startup Mode

By Steven Levy Email 11.24.08


Ray Ozzie, Microsoft's new chief software architect, is on a mission.
Photo: Lionel Deluy

지난 여름의 TechReady 컨퍼런스는 전세계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 6천명 가량이 모였다. 이 때 기조연설자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레이 오지(Ray Ozzie)였다. 흔한 일이 아니었다. 오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2005년에 들어왔으며, 바로 다음 해에, 빌 게이츠로부터 수석 소프트웨어 아키텍트(CSA) 자리를 물려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 기업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오지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이 콘클라베에서 기조연설을 한 적이 없었다. 그의 해명? 뭔가 좀 큰 걸 보여줄 때까지 좀 기다리고 싶었다.

그러나 뭔다 다른 것도 있다. 오지는 연설을 싫어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탁자 앞에서 칠판에다가 자기 비전을 그려내는 일이다. 여기서라면 능숙하게 자신의 역량과 확신감, XML 코드까지 다 그려낼 수 있다. 그러나 강연장은 다르다. 그의 말이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한테 자연스런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대중 석상에 그가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자, 게이츠의 후임자가 아무래도 직원들마저 두려워하는 모양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소프트웨어의 그레타 가르보라고 할까. 구글이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가차없이 비꼬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소식통들은 "레이는 어디에 있는가"라 물어왔다. 이제 2년이 되었는데도, 오지에 대해서는 아직 수수께끼가 많다.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오지이다. Lotus Notes의 저작자이자 Symphony의 저작자가 바로 그이다. 그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을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가 중요할 것이다.

쉬울 일이 아니다. 그렇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와 오피스로 여전히 돈을 많이 벌어들이지만, 주가는 계속 평년수준이었다. 한때 공포와 존경의 대명사, 난공불락의 시장을 가졌던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그랬건만 사람들은 비스타를 XP로 다운그레이드시키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죽었다"류의 기사나 올라오고 있다. 애플 광고의 불운한 패자 이미지가 마이크로소프트이다. 아, 그리고 올해는 25개월에 걸친 이전작업 끝에, 공동창립자인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났다.

이런 우울한 느낌을 받아보려면, TechReady에 서 오지 이전에 연설자로 누가 등장했는지를 보시라. 처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향후 광고 캠페인을 선보이는 중역이 등장하였다. 이 광고는 "옆 동네 과일회사"의 PC-대 맥 광고를 너무나 의식한 광고였다. 그 후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업들을 다독여서 비스타의 부팅시간이 골프 라운드보다도 짧게 걸리리라고 하였다. 그 다음에 등장한 사람은 자기 아이들이 아이포드를 좋아한다면서 그리 기쁘지 않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가 약속한다. "제 집세를 우리 회사가 지불해주는 한"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서 말이다. 그는 자기 아이들이 인터넷 검색을 무엇으로 하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구글을 사용할 것이 당연하다. 스티브 잡스보다도 마이크로소프트 중역들을 깊게 괴롭히는 경쟁자 구글 말이다.

오지가 무대에 오르자 톤이 바뀌었다.

그는 감정이 들끓어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성품은 부드럽고, 직선적이며, 꾸미지 않는다. 올해 53세인 그는 깔끔하고 패션도 좋다. 레드먼드 표준 스타일인 어두운 수트용 치노(chino)와 폴로셔츠를 피하고 쟃빛 셔츠와 노타이 차림이다. 머리카락은 빛나는 은빛이며, 수년간 그래왔다. (무대 공포증만 아니라면, Law & Order 외전에서 형사반장을 할 수도 있을 법 하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되살리기 바라는 소프트웨어 데모를 선보이기 전에, 오지는 자신이 누구인가부터 밝혔다.

"이런 이벤트에서 여러분을 제가 만난 적이 별로 없죠. 우리가 서로 얼마나 필요한지 아실 겁니다. 제가 어떻게 수석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를 맡게 되었는지 짧게나마 알려드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저는 빌과는 다르죠. 30년간 제가 여러분과 같이 일한 것이 아니니, 제가 뭘 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열정에 대해 짧게 말해주었다. Twitter의 140자 스타일로 말이다. (그는 실제로 Twitter를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 아니었다.)

전 소프트웨어를 사랑합니다. 상상할 수 있으면, 만들 수도 있죠.

윈도를 사랑합니다. 윈도가 없으면 PC와 PC 개발자, 웹마저도 없을 겁니다.

유비쿼터스 웹을 사랑합니다. 그 연결성과 개방성을 말이죠.

경쟁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경쟁에 뒤쳐지는 것만은 증오합니다. 따라가기만 해선 안되죠.



Ozzie works in one of his two Redmond offices. A Microsoft outsider, the new chief software architect was handpicked by Bill Gates to retool the Windows giant for the 21at century. Gates calls Ray Ozzie "one of the top five programmers in the universe."
Photo: Lionel Deluy

짧은 소개 후, 그는 일 얘기로 들어갔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는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모델에서, 소프트웨어+서비스라는 새로운 모델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섹시한 슬로건은 아니지만 그 뜻은 자명하다. 소프트웨어 박스를 팔아서 돈을 벌고, 몇 년 후 신버전(사람들이 원하건 말건)을 내놓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다.

소비자와의 관계도 지속적이고 꾸준해야 한다. 한 번 거래가 이뤄지면 끝으로 하는 대신, 가입비이건 광고료이건, 계속 돈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클라우드에서 끌어내듯 말이다. 이 비유는 계속 있어왔다. 여기서 나온 요새 유행어가 클라우드 컴퓨팅이지만, 그 효과만큼은 폭발적이다. 수 십억 달러가 걸린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따르면, 성공적인 서비스의 대표적 사례가 윈도 업데이트이다. 윈도 업데이트는 사용자 운영체제의 버그픽스나 패치 설치를 자동으로 해준다. 다른 웹-기반 메일 애플리케이션과 마찬가지로 Hotmail도 서비스이다. Virtual Earth? 물론 서비스다. 소프트웨어이되, 박스로 파는 제품이 아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오지는 그림을 그려낸다. 모든 것이 클라우드에 있으며,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웹-기반으로 될 수 있다. 데스크톱은 죽었다. 물론 꼭 필요한 오프라인 소프트웨어도 있긴 있을 터이다. 데스크톱 프로세서가 제공하는 컨트롤도 계속 있을 것이다.

데스크톱에 대한 이런 변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적 강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서비스를 오지가 대단히 강조한다 하더라도, 이상적인 소프트웨어 모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하이브리드라는 얘기이다.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라 불리우는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 서비스와의 결합이다. 훌륭한 사례가 애플 아이튠스다. 컴퓨터에 설치한 다음, 오프라인용으로 미디어를 관리하는 동시에, 인터넷용 애플리케이션으로서 노래를 사고, 스트리밍도 들으며, 추천도 얻을 수 있다.

오지가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방식을 미래 모든 전략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정규적으로 큰 제품을 하나씩 풀어넣는 회사로부터, 소비자에 집념을 가진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 끊임 없이 만들고, 업데이트하며, 지원을 해야 한다. 기조연설에서 오지는 그 방식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패키지형 소프트웨어를 녹화방송처럼 내놓되, 서비스는 생방송으로 갑니다. 제품 만들면 끝이었던 것이, 이제는 시작입니다. 원판 디스크(소프트웨어 소매제품을 만드는 원본)가 이제는 그랜드 오프닝이 됩니다."

Ray Ozzie was a University of Illinois sophomore in 1974.
그 때, 오지는 2년 이상 그가 공을 들여온 제품을 선보였다. 데스크톱 시절처럼, 클라우드 시대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를 지배자로 올려줄 최고-기밀 구상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가 웹-기반의 애플리케이션용 운영체제인 코드네임, 레드독(Red Dog)이다. 클라우드용 윈도인 셈이다. (편집자 주를 보시라.) 그 다음 Live Mesh가 나왔다. 원하는 모든 기기(컴퓨터, 휴대폰, 카메라)는 물론 원하는 장소와 원하는 이들 모두와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이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전통적인 애플리케이션을 클라우드에 어떻게 접목시킬지를 보여주는 것이 나왔다. 충격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핵심제품인 오피스를 오프라인 애플리케이션으로만 강조해 왔었다.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가 데스크톱에서 벗어나 이제는 서비스화된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이 데모에서 엑셀 스프레드쉬트가 클라우드에서 돌아갔다. 자동완성과 자동-포맷은 물론 이메일과 웹페이지로 결과를 내는 기능에 이르기까지 기능 거의 모두가 클라우드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편집자 주: 10월달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오지가 공식화시킨 마이크로소프트 레드독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은 윈도 애저(Azure)라는 정식명칭을 갖고 있다. 동 이벤트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의 온라인 버전에 대한 구체적인 사양도 제공하였다. Monkey Bites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발표내용에 대한 본지의 기사를 읽으시면 되겠다.

열광적인 박수가 이어졌다. 멋졌다.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열렬한 환호만은 아니었다. 새 방향은 무섭기도 하다. 오지가 묘사하는 새로운 방향은 "I'm a PC가 좋은지 나쁜지의 질문을 아예 부정하기 때문이다. 밀는 PC가 아니다. 클라우드다. 오지의 말이다. 삼가하면서 말하는 식이다. 우리가 돌아왔다는 것.

"모두를 놀라게 할 거라 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끝났다고 말하는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의미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발언이 나왔다. "우리 회사의 제일 큰 도전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Our greatest challenge may lie within)" 역사상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들을 악마화해왔다. 실제로 거대한 위협이 되건 안되건 악마화시킨 다음, 악을 처단할 영웅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내세웠다. 이제 오지는 어둠에 대한 싸움이 아닌, 빛에 대한 혁신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합니다. 외부 경쟁이냐, 내부 경쟁이냐를요." 분명 후자가 최고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Ray's Plan: 4 Ways to Win

2005년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온 직후, 레이 오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생존이 클라우드 컴퓨텅에 달려있다는 메모를 회사 내에 돌렸다. 3년 후, 오지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침내 그 목표에 맞는 주요제품 전략을 발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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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ndows Azure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용 운영체제"는 노트북이 아니라, 회사 내부에 있는 수 천 대의 서버에서 돌아간다. 소비자들은 웹-기반의 일을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에서 처리하며, 윈도 애저가 필요한 자우너을 배분한다.

출시예정 : 2009년 후반
경쟁자 : 구글 App Engine, 아마존 EC2 (이미 사용 가능하다.)

2
"Zurich"

애저 서비스 플랫폼의 코드네임이다. 개발자들이 자신의 클라우드-기반 서비스와 웹프로그램을 관리할 때 도움이 되는 툴 모음이다.

출시예정 : 현재 사용 가능(제한적인 프리뷰이다)
경쟁자 : 무료 오픈소스 툴

3
Live Mesh

파일과 사진, 음악을 사용하는 기기와 싱크시킬 수 있도록 돕는 PC/맥 사용자용 레드독 서비스
출시예정 : 2009년 하반기 예정이며, 현재 퍼블릭 베타
경쟁자 : 애플 MobileMe

4
Office Web Apps

오피스 다음 버전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보물(엑셀, 파워포인트, 워드)의 상대적으로 완전한 웹버전을 포함하게 된다. 사용자들은 광고로 돌아가는 무료버전에 접속하거나, 가입비를 내면 된다.

출시예정 : 2010년이며, 더 일찍 나타날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경쟁자 :구글 Docs, 야후 Zimbra, Zoho (모두 현재 사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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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한테서는 이런 개성만점의 영감을 주는 발언을 거의 못들었을 것이다. 게이츠는 기조연설을 할 때, 제품 시연과 알고리즘에 치중했었다. 하지만 원조 수석 아키텍트는 말라리아 퇴치와 사인필드(Jerry Seinfield)와의 광고찍기에 나섰다. 현재의 수석 아키텍트는 자신의 역할을 다르게 본다. 수수께끼이건 아니건, 오지는 9만 명의 인력과 600억 달러의 수입액, 말할 수 없는 빈도의 블루스크린을 가진 거대기업을 이끌어야 할(혹은, 끌어야 할) 인물이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오지의 장점이 있다. 사물의 다른 면도 볼 줄 안다는 사실이다. 그는 35년 전부터 그래왔다.

한 마디로, 레이 오지의 마이크로소프트 다시만들기는 1973년에 이미 시작하였다. 아직 일리누이 대학교 학생이던 시절이다. 오지는 언제나 기술광이었다. 시카고에서 자라난 그는 분명, 자그마한 에이전시를 공동설립한 보험 브로커인 아버지로부터 모험자본가의 성격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레이의 남동생인 잭도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플러스-서비스의 주요 엔지니어이다. 철판 납땜하던 일과 Heathkit 카탈로그를 기억하는 잭은 형이 "순돌이아빠(Mr. Electronic Tinkerer)"같았다고 말한다.

Urbana-Champaign에서 보냈던 첫 두 해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대학 내 메인프레임 컴퓨터 관리자들에게 펀치카드를 내는 것에 셀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대학 내를 거닐 때 그는 구 CERL(Computer-based Education Research Laboratory) 빌딩을 지나곤 했다. 어두운 창에 5층짜리 벽돌건물이었다. 가끔 이상한 오렌지빛이 누군가 있음을 나타내곤 했었다. 그러던중 2학년 때 어느 봄날, 호기심이 생겼다. 그 때가 바로 그의 일생을 결정내렸다.

나중에 한 CERL 사람이 쓴 것이 있다. "오렌지색 터미널이 줄지어 놓였고, 앞에 한 사람씩 앉아 있었죠. 환상적이었어요. 오디오 기기가 달린 플라즈마-그래픽 터미널이 잔뜩 있었으니까요. 18인치 정도 되는 거대한 갈빛 큐브가 한 쪽에 놓여 있죠. 엄청나게 무겁게요. 외양은 좀 부족했어도 퍼포먼스는 뛰어났습니다. 디스플레이 스크린은 비디오 튜브라기보다는 플라즈마 패널이고요. 모든 것을 오렌지색 플라즈마 도트로 표시했죠... 키를 누를때마다 반응은 순간적이곤 했습니다."

오지는 플라톤(Plato)을 발견하였다. 자동 교습화 프로그래밍 로직의 두문자(programmed logic for automated teaching operations)였다. 이제는 거의 잊혀졌지만, 플라톤은 완전히 시대를 앞선 시스템이었다. 이 때문에 플라톤 시스템에 대한 열성적인 팬들은 좋았던 지난날에 대해 지금도 얼마든지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런 얘기는 당시, 사실이었다. 대학 내 공학교수 빗쳐(Don Bitzer: 이름도 어울렸다.)가 만들어낸 이 시스템은 수 백 대의 터미널을 거느렸고, CDC 6400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었다. 목표는 "자동학습"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지가 플라톤에 꼼짝못했던 이유는 플라톤의 상호반응식(interactive) 특성이었다. 사용자들은 컴퓨터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용자들과 직접 접촉하고 직접 반응을 얻었다. 오지의 말이다. "Personal Notes라 부르는 기능이었는데요. 이걸 이메일이라 부를만 했죠. Talkomatic이 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실시간 그룹채팅이기도 하고, 인스턴트 메신저이기도 했어요." 컴퓨터 게이밍의 기념비가 생기기 훨씬 전에, 플라톤 프로그래머들은 온라인 tic-tac-toe와 Hangman 게임까지 나아갔다. 그것도 다른 컴퓨터 센터와 연결하여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게임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스타트렉에서 영감을 얻은 Empire라는 게임도 있었다. 플라톤 커뮤니티는 21세기 인터넷을 타임머신으로 되돌린 꼴이었다. 그것도 35년 전, 스팸과 사기행각, 상업주의가 없는 인터넷이다.

넬슨(Ted Nelson)은 책, "Computer Lib/Dream Machines" 에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똑똑한 사람들이 미친양 작업에 몰두한 커뮤니티였다." 오지도 그중 하나였다. 오지의 말이다. "도대체 속에 뭐가있는지 봐야 했어요. 그 자리를 빌고, 빌고, 또 빌어서 시간당 1.75달러 받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지의 캠퍼스생활이 되었다. 플라톤에서 일했던 또 하나의 학부생, 커웰(Len Kawell)의 말이다. "플라톤에 시간을 덜만 썼어도 학점이 더 높았을 겁니다. 재밌는 곳이었어요. 1주일 내내, 24시간 내내 파티였죠. 애플리케이션과 게임을 만들고, 이메일을 쓰며, 온갖 일을 다했습니다. 레이도 뛰어난 프로그래머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고요."

마술은 사람들이 컴퓨터에 접속할 때 일어났다. 오지를 끌어들인 마술이다. 한 번은 한 교수와 함께 수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였다. 교수가 마을 다른쪽에 살아서, 오지는 그와 원격으로 일을 같이 하였다. 한 가지 빼고 오지는 그 교수를 좋아하였다. "그의 타자실력이 최악이었어요. 이메일은 매우 달변인데, Term Talk은 완전 독수리에 실수도 많고 느렸어요." 프로젝트가 끝나자 교수는 파티를 열었고, 오지는 그를 만나고 나서야 타이핑이 느린 이유를 알았다. 교수는 사지를 쓸 수 없었다. 그는 이빨로 막대기를 하나 물고 텍스트를 치는 사람이었다. 오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

Plato terminals at the University of Illinois gave users interactivity.
"제 태도를 정말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와 마음과 마음으로 교신을 해 왔었어요. 기술덕분이죠. 그것도 편견 없이 말이죠. 그 때 이후로 전 커뮤니케이션과 인터랙티브 시스템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그의 첫 진로는 마법사-수준의 프로그래머였다. 1979년, 보스턴 시절의 미니컴퓨터 회사인 Data General에서 오지를 고용한 삭스(Jonathan Sachs)의 말이다. "그가 뛰어났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2년 후, 미래는 개인용 컴퓨터임이 분명해지자, 오지는 케임브릿지에 있던 VisiCalc 개발사, Software Arts에 입사한다. 당시 전자-스프레드쉬트의 공동 발명자였던 브리클린(Dan Bricklin)의 말이다. "정말 일하기 흥미로운 곳이었어요. 오지는 최고 수준의 프로그래머였고요."

하지만 오지가 정말 원했던 일은, 개인용 컴퓨터에서 플라톤의 재창조였다. 특히 완전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그는 그 기능을 Group Notes라 불렀다. 최초의 온라인 컨퍼런스 툴이 이것이었다. 코멘트가 가능했고, 포스팅을 통한 대화도 가능한 수퍼 게시판의 일종이었다. 그는 Lotes Development의 공동창립자인 케이퍼(Mitch Kapor)와 만났고, 케이퍼는 이런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좋아하여, 오지의 계획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런데 요구가 더 있었다. 로터스 1-2-3 프로그램이었다. 1983년, 오지와 케이퍼는 악수를 한다. 로터스가 프로젝트 완수에 돈을 지원하고, 오지는 팀을 만들어서 Symphony라 부르는 애플리케이션 패키지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9개월 후, 오지가 Symphony를 완성하자, 케이퍼는 약속을 지켰다. 오지의 사업적인 통찰력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는 노츠(새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명칭)가 로터스가 아닌, 오지가 만들게 될 아이리스(Iris Associates)에 속하게 만들었다. 대신 로터스는 최종제품을 유통시킬 독점적 권환을 갖게 되었다.

Ozzie (circled) is pictured at a 1982 Software Arts product launch.
노츠가 돌아갈 운영체제를 고를 일이 그 다음 결정사항이었다. 1984년, 맥이 등장하자, 그는 노츠가 애플이 유행시킨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돌아가야 하리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오지는 어느 GUI 시스템을 골라야할지 확신을 못했다. 한 가지 선택은 윈도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첫 번째 버전의 윈도를 거의 발표도 하지 않았고, 윈도가 앞으로 피어날지 확신감을 전혀 주지 못하였다. 1984년 12월, 시애틀에서 오지와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 대한 기나긴 대화를 나눈다. 옆에 Burgermaster 드라이브-인이 있는 Bellevue의 한 빌딩에서였다. 게이츠는 Software Arts 시절때부터 오지를 알고 있었다. 오지에 따르면 게이츠는 윈도에 대해 확신감을 안겨다 주었다. 오지의 말이다.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노츠는 1989년에 나오지만, 팔기 쉽진 않았다. 설치가 어려웠고, 사전에 이해를 좀 해야 하며, 사용자 200명 라이센스가 62,500달러였 다. 전임 아이리스 엔지니어 모로미사토(George Moromisato: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오지와 같이 일하고 있다)의 말이다. "이게 차세대 히트작이 되리라 의심도 안했어요. 우리부터가 매일 썼으니까요. 노츠로 살고, 노츠를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듯, 레이는 자기 인생을 이미 만들어 놓았습니다만, 그 때 당시로서는 너무 생소했죠. 그의 부인과 아이들도 모두 이메일을 사용했습니다. 로터스 노츠상에 일정을 공유하고, 어디에서건 노츠 데이터를 접속했어요. 결국 세상이 그렇게 될 바였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 믿었죠."

Price Waterhouse의 IT 부장인 로비(Sheldon Laube)가 이 노츠를 눈여겨보고, 이런 보고를 올렸다. "세상을 바꿀 물건입니다." Price Waterhouse에서만 1만 개의 라이센스를 주문하였고, 노츠는 대성공을 거둔다. 로터스는 1994년 아이리스를 9,400만 달러를 들여 인수하였고, 1년 뒤, IBM은 로터스를 35억 달러에 인수하 였다. 그 값이 노츠 값, 레이 오지의 값이라는 데에는 의심이 없다. 그는 IBM의 노츠부를 2년동안 운영하였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여겼다. 그의 말이다. "전 IBM에 회의적이었어요. 노츠를 인수할 때 사용자가 2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1억 5천만 명이 되었어요. 로터스로 했다면 그 정도 규모까지 못올렸을 겁니다."

Buzz Is in the Air
Why cloud computing is everyone's favorite trend.

기술 전문가와 벤처 자본가, 심지어 블로그 독자들마저도 요새 뜨는 것이 "클라우드"임을 잘 안다. 그런데 클라우드의 의미가 무엇일까?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에 따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엘리슨의 말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아닌 게 안떠오를 정도입니다. 완전히 뭐가뭔지 모르겠더라구." 하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렇지 않다면야 델 컴퓨터가 어째서 2007년 클라우드를 트레이드마크화시키려 했을까? 명칭이 이미 도처에 나와서? 구글 Enterprise 사장인 지루아드(Dave Girouard)의 말이다.

"넷상의 소프트웨어 기능을 죄다 과장한 것이죠. 소비자들에게 클라우드 컴퓨팅은 웹입니다." 그러나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종류의 사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Gmail과 Hotmail과 같은 웹-기반 프로그램에서 Salesforce.com과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가 사용하는 모델에 이르는 모든 것이다. 즉, 클라우드 안의 모든 인터넷-기반 서비스를 뜻한다. 다른 한 가지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기 원하지만 그 서비스용 클라우드까지는 못갖춘 개발자들을 위해 클라우드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지와 연산, 관리를 빌리게 된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전쟁의 전선이 바로 마지막에 언급한 기능이다. 아마존 웹서비스부 부사장인 셀립스키(Adam Selipsky)의 말이다. "사이즈에 제한은 없습니다. IT 업계 전체가 얼마나 크죠?" 경쟁사들 역시 나름의 클라우드를 갖추고 있다. 수많은 데이터센터 말이다. 그리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컴퓨터학 박사들도 고용해 놓았다. 24시간 가동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다.

클라우드하는 기업들은, 한 때 PC 하드웨어에 들어있던 것들을 뭔가 모호한 곳에 옮겨다놓고, 써야할 때마다 쓸 수 있게 한다는 개념에 열광하리라 가정한다. 그러나 클라우드 컴퓨팅이 현실에 보다 가까워질수록, 회의론도 거세어진다. 오픈소스 권위자이자 Free Software Foundation을 창립한 스톨만(Richard Stallman)은 클라우드가 "바보보다 더 멍청한" 유행이라 일갈했다. 마케팅 유행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스톨만의 시각에, 클라우드 컴퓨팅은 사용자 정보를 개인 기업의 폐쇄적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옮겨놓는 행위다. 그의 예언에 따르면, 클라우드는 먹구름이 될 것이 뻔하다.

오지는 IBM을 떠나, 협력형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Groove Networks라 부르는 회사를 창립한다. 2001년에 나온 Groove app은 뛰어난 기술에 P2P 전송, 강력한 보안을 갖추었다. 하지만 버블붕괴는 가혹했고, 오지는 회사 스스로 살아나갈 수 없으리라는 점을 깨달았다.

분명한 선택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파는 것이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Groove에 5천만 달러를 투자해 놓은 상태였다.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입장에서는 Groove의 기술이 보너스요, 실제 이득은 레이 오지였다. 게이츠는 오지를 "우주에서 제일 뛰어난 프로그래머 다섯 명 중 하나"라 묘사한 적이 있었다. 전임 Groove 직원들도 게이츠가 회사를 방문해서는 오지와 함께 알 수 없는 기술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던 때를 기억한다. 그들은 즉석에서 맞장구를 치면서 오지는 아이디어를 전하고, 게이츠는 기뻐하면서 되받았다. 완전 존 콜트레인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공동연주회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오지는 인물도 인물이거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부활시키기 위한 게이츠와 발머에게 있어서 최적의 파트너에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오지에게는 무엇이 있나? 오지는 마이크로소프트 지도자들의 명석함을 존경하지만, 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노골적인 전략때문에 애먹어 왔었다. 더구나 오지는 대기업들에 대해 평생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물리적으로 보스턴에 정착해 있다. 전임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 엔지니어와 결혼하여 아이를 두 명 낳았다. 오지는 반독점 재판에서 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악랄한 행위를 줄였다고 본다. (그의 말이다. "다른 회사입니다. 전혀 악의 기운은 없어요. 제가 원래 믿던 바와 틀리지도 않습니다.") 가정생활로 말하자면, 그의 아들은 거의 대학 졸업할 때가 되었고, 딸은 이제 대학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동서 양 해안가를 왔다갔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요소는 IBM의 제안과 같았다. 충격요법이다. 발머는 그 요법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오지는 정말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가 이제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더 큰 무대와 인터넷, 대전환을 잡았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지도자, 사상가, 기술자에게 궁극의 기회이지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첫 달은 쉽지 않았다. 오지는 마이크로소프트 문화에 흠뻑 빠져서 차세대 기술 아이디어를 너그럽게 공유하였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교를 해라.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회사를 바꾸어라고요. 하지만 캠퍼스를 거닌지 6개월이 되자, 우리가 A에서 B까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더라구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나 비스타처럼 커다른 제품에 집중해 있다. "무엇을 다음에 할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가 그동안 그리던 것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10년 전, 게이츠가 Paul Revere와 같은 메모를 남긴 것처럼 말이다. 2005년 10월 30일, 오지의 선언은 다음과 같다. "The Internet Services Disruption" 이 이메일이 중역 100명과 관리자들에게로 갔다. (그 다음에는 모든 직원들에게 메모가 갔다.) 보낸사람은 오지가 아니라 게이츠였다. 게이츠는 수신자들에게 "인터넷 파도만큼이나중요한 메모"라 덧붙였다.

이 오지 메모는 실행을 주문하는 메모인 동시에, 회사의 현재 상황에 대한 미묘하면서 단호한 비판이었다. 기술을 묘사하면서, 그는 좀 순화시킨 말이긴 해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보트를 놓쳐버린 위험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우리 제품은 여러 가지 놀라운 방식으로 인터넷을 활용해왔습니다. (속뜻: 불충분하다.)

우리의 위대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력이 항상 원래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속뜻: 뒤쳐졌다.)

여러 전선에서 진전을 계속하겠지만, 강력하고 유능한 경쟁자들이 인터넷 서비스와 서비스-중심의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속뜻: 우리는 집중을 안한다.)

경쟁자는 그렇다치더라도, 엄청난 소프트웨어-서비스 활동을 풀뿌리부터 하는 신생기업들이 많습니다. (속뜻: 차고에서 회사나 차리는 20대들이 우리를 추월하고 있습니다!)

이들 신생기업들은 인터넷을 자기네들 "기반(raw)" 플랫폼으로 간주합니다. (속뜻: 우린 비스타 완성시키기도 바쁜데요!)


Ozzie's top lieutenants at Microsoft's Windows Live Core offices are (from left) David Treadwell, Debra Chrapaty, John Shewchuk, Jack Ozzie, and Amitabh Srivastava.
Photo: Lionel Deluy

오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기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며, 될 수 있는 한 신생 웹기업과 같아져야 한다고 썼다. 광고로 유지하거나, 가입비를 내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그는 "잘 돌아가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 으레 드러내는 껄끄러움 대신, "부드럽게" 작동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속뜻은 좀 바꿔라, 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 펠로우이자, 오지의 사람이 된 슈척(John Shewchuk)의 말이다.

"그런 방향으로 분명 가고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도약을 하게 되었죠. 레이가 이런 통합적인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1995년 게이츠가 했던 것보다 더 어려우리라고 느낀 발머의 말이다. "정말 중대한 메모입니다. 인터넷은 사업행위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어요. 기술이 바뀔 뿐이죠. 가입비-기반, 광고-기반의 모델은 정말 더 큰 변화입니다."

메모가 즉각적인 결과를 빚어내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스타와 오피스를 출하하기 전까지 패러다임 변화를 고려조차 할 수 없는 회사다. 오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계속 얘기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시작하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게이츠의 임무가 다른 이들로 인수인계되면서(가령, 수석 연구전략은 먼디(Craig Mundie)가 맡게 된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대사로 나타나기를 좋아한다.), 오지는 게이츠의 제품리뷰와 전략기능 일부를 맡는다. 동시에 그는 조용히 자기 메모 아이디어를 구현시킬 팀을 만들었다. 이 팀은 오지의 예전 기업들로부터 주요 인물들을 모아놓은 팀이었다. 모로미사토의 말이다. "제가 여기 있는 이유가 레이때문이에요." 레이의 동생이자, Groove의 공동 창립자였던 잭 오지도 들어왔다. "형의 비전을 믿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 최고의 인재를 뽑아 오지 팀으로 모셔오는 일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그러나 발머가 나서서 도와주었다. 발머는 부사장인 트레드웰(David Treadwell)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거 하라고 팔은 안부뜨릴 텐데, 대신 꽤 세게 비틀겠소." 하지만 트레드웰은 오지 팀에 합류하여 윈도 Live Core 팀을 이끌게 된다.

오지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여러 다른 업무환경을 접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트레드웰의 말이다. "일을 완수하는 면에 있어서 특히 의도적입니다. 최종 소비자에 집중하죠." 예전에 마이크로소프트 개발팀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제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다른 제품과 잘 연동하는지 알아보는 쪽이었다. 이런 "통합성"은 게이츠가 언제나 강조해온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지는 그러한 접근이 장점이 있다고 해도, 혁신마저 막아버릴 수 있다고 본다. 트레드웰의 말이다. "독립적 혁신의 철학이죠. 통합에 대해 심각하게 신경쓰기 전까지 일단 발전을 이루고 보는 겁니다. 레이가 강력히 추진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오지의 접근방식은 앞으로 밀고 나가려는 이들을 부추겨 성과를 내는 식이었다. 그 다음에 팀을 따로 꾸려서 미비점을 채우고, 출하에 맞게 조정한다.

그의 팀은 신생기업 스타일의 소프트웨어 개발팀으로서, 보다 유연한 문화 개척자 격이다. 그 신호로서 오지는 자신의 팀과 같은 공간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의 말이다. "1인치 옆에 있지 않으면, 3만 피트 옆에 있죠. 뭔가 있으면 제가 신경씁니다. 제가 직접요." Res West 캠퍼스 빌딩 1층에 있는 지하 대피소 스타일의 복도 끝에 그의 팀이 있다. 그는 건축가들에게 더 개방된 디자인을 주문하였다. 이제 Windows Live Core 그룹으로 가면, 마치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서 Futurama 셋트장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무실 창문이 훤히 복도쪽으로 열려 있어서 바로바로 토론도 가능하다. 칠판이 모든 곳에 있고, 당구대와 미니-라운지, 스낵존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오지의 일하는 스타일이 워낙 스컹크같기에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심했다. 트레드웰의 말이다. "'도대체 이 새로온 놈이 뭐 좋다고 이 사람들을 끌어다가 공간을 줬을까?'라는 의문이 돌았어요. 긴장감이 좀 생겼죠."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무공간 배정 원칙을 깨뜨린 오지였다. 그는 사내 심리에 맞섰다. 경영 전문가들은 이런 저항의 항변을 아마 높이살지 모르겠다. 오지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 그게 누굽니까? 그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요."

오지는 차트 설명이나 해대는 중역이 아니라, 신생기업 CEO처럼 모든 과정에 관여하였다. 잭 오지의 말이다. "일단 이제 뭔가요, 제품 관리자인가요, 개발자인가요라 묻습니다. 사기를 불어넣어주죠. 그러면 그런 사람이 이끄는 팀에 들어가고 싶어하게 됩니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팀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 규모가 커진다면? 잭의 말이다. "하루밤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죠. 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런 것이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본질은 결국 팀이 실제로 무엇을 내놓는가이죠. 우리는 매우 결과-지향적인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오지 프로젝트는 결과를 내야 했다. 소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용 운영체제가 그것이었다. 보다 많은 프로그램에 웹기반이 되어갈수록, 윈도의 당위성(데스크톱에서 소프트웨어를 돌림)은 중요도가 더 떨어졌다. 데스크톱 운영체제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와중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돌릴 지배적인 OS를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따라잡아야 할 경쟁사들이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존은 이미 2006년 초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발족시켰고, 40만 명 이상의 개발자들이 만드는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를 수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뉴욕타임스과거 기사 모음집도 있다. 구글은 아예 회사 자체가, 사람들이 데스크톱에서 클라우드로 가는 것을 전제로 만든 회사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클라우드 OS (코드네임은 레드독이며, 현재 윈도 애저로 불린다)로 DOS나 윈도처럼, 클라우드를 지배하고 싶어한다.

오지는 레드독 프로젝트를 마이크로소프트 베테랑인 스리바스타바(Amitabh Srivastava)와 같이 발족시켰다. 그는 비스타의 엔지니어링을 맡은 Microsoft Research에 있는 최고수준의 컴퓨터학자다. 발머가 우기는 바람에 그들의 첫 회의는 4:45에 시작되었다. 좀 애매한 시간대였다. 스리바스타바의 말이다. "우리 가족 원칙 중 하나가 저녁 거르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나 둘이 대화를 시작하자 아무도 시간을 모르는 채 8시가 되었다. 그때서야 스리바스타바는 끼니 때가 지났음을 알았다.

스리바스타바는 비스타를 해놓은 뒤에 오지가 클라우드 OS 프로젝트를 이끌도록 허용하였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반-은퇴 상태였던 데이브 커틀러(Dave Cutler)를 프로젝트에 합류시키는 것이었다. 66세의 커틀러는 컴퓨터업계 전설 중 하나이다. 그는 DEC용 VMS 운영체제를 작성하였으며, 후에 윈도 NT 팀을 이끌었다.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Sgt.Rock을 합친 것처럼 인내심이 없는 커틀러의 출현은 신뢰성을 갑자기 안겨다줄 정도의 사건이었다. 스리바스타바와 커틀러는 엑스박스 라이브로부터 Virtual Earth에 이르기까지 마이크로소프트 내 모든 서비스 그룹을 방문하는 것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2006년 12월, 스리바스타바는 나름의 비전을 제시할 문서를 만들었다. 제목은? "Owning Clouds"다.

오지와는 달리, 스리바스타바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보통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레드독을 만들 요량이었다. 그는 레드먼드 캠퍼스 중앙에 천 대의 데이터센터를 조성하여, 초기 버전을 테스트하였다. 이 작업을 위해, 그의 팀은 근처 빌딩의 전기까지 다 끌어다 쓸 정도였다. 발머나 게이츠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서 말이다. 스리바스타바는 자신이 레이에게만 지시를 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저항적인 성격은 코드네임에서도 드러난다. 스리바스타바의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우리 팀이 레드독 맥주를 좋아해서라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말씀드리죠." 그런데 커틀러는 좀 다른 말을 했다. "Hotmail을 방문했었는데, San Jose에 Pink Poodle이 라 불리는 굉장한 악평의 스트립바가 있었어요. 이야. 우리 프로젝트 이름을 핑크 푸들이라고 하자고 했더니 모두들 말리대요. 근데 그 때, 누군가 레드독을 말했습니다. 그거 괜찮군이라는 분위기였죠." 커틀러는 팀원들에게 빨간 나이키 스니커즈를 신기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마이크로소프트 최신 운영체제에서 제일 엄청난 부분은 아마, 마이크로소프트가 큰 프로젝트에 으레 배치하는 인원의 일부만 가지고도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일 것이다. 커틀러의 말이다. "윈도에만 정말 수 천명이 붙어 있죠. 하지만 집중성 있게 소수의 그룹이 훨씬 더 나아요. 이 프로젝트도 훨씬 소규모입니다. 150명 정도죠."

내년에 나올 레드독도 물론 아마존에서 구글에 이르기까지 경쟁자가 있다. 구글은 특히 고유의 클라우드 OS인 App Engine을 갖고 있는데, 이 엔진은 개발자들에게 저가, 혹은 아예 공짜로 호스팅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를 맡은 중역인 슈라파티(Debra Chrapaty)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프라가 워낙 효율적이어서, G로 시작하는 회사와도 비용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라 말한다. (그녀는 회사 이름을 다 말할 경우, "그 이름을 말할 때마다 그 브랜드 가치를 올려주게 되지요."라 말한다.)

G모 회사의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서버와 운영체제 시장을 워낙 넓게 잡고 있으니, 클라우드 컴퓨팅에서도 주요 주자가 될 것이 틀림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이 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식 더러운 행동의 확장판이라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본 전략은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충분한 시장을 점유하여, 다른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 표준을 따르도록 시키는 겁니다." (이와 반대로 구글은 구글 클라우드 기술의 오픈소스 버전에 축복을 내렸다. IBM과 야후도 이 버전을 채택한다.) 오지는 그런 언급에 상대하지 않는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기본적인 철학이 같습니다. 윈도 기술로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있어요. 윈도가 위대한 기술이며, 여기에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아주 많이 탑재하기 때문이죠. 오픈소스를 원하신다면,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스리바스타바와 커틀러는 레드독의 신뢰성이 경쟁우위를 안겨다주리라고 본다. 커틀러의 말이다. "와서 이 플랫폼을 써보라고 한 뒤에, 데이터를 잃게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안좋죠. 끔찍할 겁니다. 그래서 우린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오지는 물론 레드독과 빨간 스니커즈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제일 가까운 프로젝트는 클라우드 OS 상단에서 돌아가는 블럭 서비스중 하나인 Live Mesh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자의 주소록, 일정, 그 외 다른 정보를 어떻게 부드럽게 접속 및 싱크를 시키는지에 대해, 당시 부사장이던 래익스(Jeff Raikes)가 오지에게 물어봤었다. 그에 대한 서비스가 바로 Live Mesh다.

오지에게 있어서 이런 도전은 근본적이다. 클라우드를 통해 컴퓨터에 접속하고, 결국은 서로간에 통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지의 말이다. "제대로 된 싱크야말로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모두 실패죠." 더군다나 이것을 수 백, 수 천만 명의 사용자들 규모로 늘려야 한다. "싱크의 규모성은 어려운 작업입니다." 애플도 이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유사한 서비스인 MobileMe를 지난 6월 발족하였지만, 싱크가 아니라 싱크대에 흘려 보낼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

데모로 시연해 본 Live Mesh는 인상적이다. 컴퓨터로부터 사진과 음악을 클라우드로 보내고, 연결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부드럽고 자연스런 방식으로 옮겨 넣는다. 수 백만 명의 사용자들이 수 십억 가지의 아이템을 갖고 어떻게 사용할지, 어떻게 그 사용자들을 계속 잡아둘지는 또다른 문제다. (부드럽게 말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그저 잘 돌아간다"의 기록과 별 상관이 없다.)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 오지는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부분만 하도록 시켰다. 트레드웰은 팀이 여러 가지 요란한 꾸미기를 버렸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초심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레이는 매우 단호합니다."

Brothers Jack and Ray Ozzie hang out in 1979.
오 지에게 있어서 소프트웨어의 초심이란 기능확장에 있지 않다. 오히려 연결성에 대한 자신의 꿈에 있다. 케이퍼의 말이다. "Live Mesh가 바로 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Groove, Notes의 아들 뻘이죠." 당연히 오지가 사랑했던 플라톤의 아들이기도 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오지는 자신이 대학교 2학년 때 보았던 것을 작업하고 있다. 다만 그 비전이 더 이상 레이 오지의 비전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전이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오지의 말이다. "말씀드리죠. 첫 해던가, 수석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발표가 있기 전에 몇 달 전입니다. 결정을 내부적으로 내려야 했죠. 내가 여기 있기를 바라는지 말이죠.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좋은 프로젝트를 위해서인가? 사람들이 유능해서? 어째서 참여하냐의 문제였습니다. 스스로에게 돌아봤어요. 내가 하는 일을 내가 어째서 하려 하는가? 기술과 인재, 조직 전체를 다 아우르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좋습니다. 그래서 해 보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마이크로소프트를 성공시켜보자이죠. 예.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납득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여기 뭐 20년동안 일해온 곳은 아니죠. 하지만 매일 5시에 일어나서 6시나 6:30에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8시 이전에는 집에 가지도 않죠. 이 회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겁니다."

말인즉슨, 9만 명의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을, 그를 따라 클라우드로 이끄는 일이다.

Senior writer Steven Levy (steven_levy@wired.com) wrote about the creation of Google's new Web browser in issue 16.10.

Ray Ozzie Wants to Push Microsoft Back Into Startup Mod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Posted by nus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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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진 놈이지. 오지.. 무슨 마법사(?) 비슷하잖아? 이름도 멋있어부러~

  2. 잘읽고갑니다~ㅎ 신념이 멋지네요.. 이제 사회 첫 발을 내딛을라 하는데... 본받을점이 많네요ㅎ